[ FESTIVAL LEADER ] 




열정, 축제가 되다


前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現 동대문미래재단 이사장) 김 동 호









1996년, 우리나라 영화계의 역사를 바꿀 축제가 부산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 남포동 극장가 일대에서 첫 출발을 알렸다. 




1996년 당시 부산의 문화적 환경과 세계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의 위치는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열정과 목표는 영화계의 뜻을 모았고, 시민사회를 움직였으며, 


경제계와 정치권의 도움을 이끌어 부산국제영화제를 탄생시켰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적인 영화 축제로 성장했고, 우리나라 영화의 발전과 세계 시장 진출에 가장 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산국제영화제가 계속되는 한 함께 찾게 될 한 사람,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만났다.












edit Kim Jeongwon


photo Lucy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레지옹 도네르 슈발리에 프랑스 최고 훈장을 프랑스 대사로부터 전달 받은 김동호 이사장











"저에게 영화는 제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그런 매체였습니다."








김동호 이사장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영화와 문화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화와 인연을 맺은 뒤 30년, 그는 우리나라와 영화계에 부산국제영화제라는 선물을 남겼다. 


우리나라 영화계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하나의 열쇠인 부산국제영화제. 




그간 갈등과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김동호 이사장의 포용력은 분쟁을 끝내고 상처를 덮었다. 


그에게 부산국제영화제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Q. 부산국제영화제의 탄생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문화공보부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공사 안에 있는 시사실에서 우리나라에서 막 만들어졌거나 해외에서 수입한 영화를 보았죠. 




그 덕분에 1988년 이후 만들어진 우리나라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고, 좋은 외국 영화도 이때 많이 접했어요. 


리나라 영화로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와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기억에 남고, 


다른 나라 영화로는 조안 첸이 나오는 <마지막 황제>나 <늑대와 함께 춤을> 같은 작품들이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이때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영화에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Q. 영화진흥공사를 거쳐 공연윤리위원회로 옮기셨습니다.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으로 간 건 1994년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영화 진흥과 관련된 업무를 하다 심의를 하는 기관으로 가게 돼 개인적인 갈등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때 저는 가능한 영화인의 편에 서서 심의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선정적이란 이유로 반대가 심했던 <크라잉 게임>이나


 공산권 국가에서 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10월>, <전함 포템킨> 등을 통과시켰었습니다. 




저는 행정관료였지만, 영화는 영화로써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입니다. 


영화는 관객이 즐기는 종합예술이자 오락매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죠. 지금도 그렇고요.












 2011년 프랑스 부줄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김동호 이사장






Q.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사임 이후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왜 부산이었습니까?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와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두 곳을 방문했었어요. 


우리나라 영화가 경쟁부문에 올라가 대표단을 이끌고 갔던 것이죠. 




해외 영화제를 방문해보니, 자국의 영화를 해외에 알리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매체, 창구 역할이 바로 영화제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남양주의 영화종합촬영소가 완공되면 서울국제영화제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영화인들을 초청해 자문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아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때 부산의 젊은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영화제를 만들자며 제게 수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했고, 그 뜻에 전폭적으로 동의하고 동참하게 됐습니다.










Q. 우리나라의 첫 번째 국제영화제를 만들며 다른 나라의 영화제를 참고한 부분도 있었을까요?






부 산국제영화제는 1회 때부터 야외 상영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그건 스위스의 로카르노국제영화제의 야외 상영을 참고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회 행사가 끝나고 바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시네마트를 처음 접했습니다. 




전 세계 영화인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받아 투자자와 연결시켜주는 프로젝트 마켓이었는데, 


이 시네마트를 모델로 해서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 Pusan Promotion Plan)을 만들게 됐습니다. 


이 PPP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빠르게 세계 영화계에 알리고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됐죠 .












 2001년 세계 8대 영화제 집행위원장 서밋 컨퍼런스에서









Q.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셨던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영화제를 하려면 처음부터 규모가 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화가 140~150편 정도 됐고, 관객도 19만명 정도가 다녀갔습니다. 


15회나 16회 때와 비슷한 관객 수였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예산을 마련하는 일이었어요.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총 22억 원의 예산이 필요했는데, 부산시에서 3억 원, 입장료 수익이 3~4억 원 정도였습니다. 


15억 원 이상을 발로 뛰고, 사람들을 만나며 협찬을 받아야 했습니다. 


기업협찬이나 광고비 등으로 지원을 받아야 했는데 당시만해도 국내에서는 영화제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영화제의 광고 효과에 대해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죠.




다음으로는 영화제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영화제가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고, 


제가 몸 담았던 15년 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회 때부터 장관축사를 없애고 개막선언만 넣었습니다. 


제가 잠시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나있다 다시 복귀한 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조직위원장이하게 돼 있던 개막선언까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제는 영화인과 관객들의 축제여야하고, 


정권이 누구건 어떤 입장이건 영화제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원칙을 지켰습니다.










Q.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우리나라 영화와 영화계의 모습과 세계적인 위상이 변화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직접 느끼신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단적인 예로 칸국제영화제가 있을 것입니다. 1997년이 칸국제영화제 50주년이 되던 해였는데, 


그 때까지 우리나라 영화가 칸에서 상영된 것은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 물레야 물레야>를 시작으로 모두 5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고 칸의 프로그래머가 부산에 와서 한국영화를 초청하기 시작했죠. 


1998년 한 해에만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단편영화 한편 등 4편이 칸으로 갔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가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했던 김기영 감독의 회고전을 그대로 가져가 프로그램으로 진행했고, 


파리 시네마테크에서는 임권택 감독의 회고전을 열었어요. 



이것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임 감독의 작품 72편을 모아 회고전을 했던 걸 가져간 것입니다.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해외에 우리나라 영화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부분 심사위원들(왼쪽부터, 세르즈투비아나 프랑스 시네마테크 관장, 클레어 드니 심사위원장, 헬레나 린드브랜 평론가, 패트릭 페를 스위스 언론인)






Q.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이사장 등으로 오랫동안 함께 해오셨습니다.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더욱 좋은 영화제로 발전하기 위해 조언을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앞으로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떤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개최되고 발전해야 한다는 원칙이 분명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부산국제영화제가 지향해 왔던 아시아의 영화를 집중 조명하고,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며, 


그들의 제작을 실질적으로 지원해 준다는 기본 원칙도 충실하게 유지돼야 할 것입니다. 


이런 원칙들 위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계속 개발된다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객을 위한 영화제로 남아있길 바랍니다. 영화제는 관객들의 축제이니까요. 


영화제가 성공하려면 좋은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좋은 관객이 없다면 그 영화제는 죽은 영화제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Q. 이사장님의 삶을 축제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살아왔던 시간을 세 부분으로 나눠본다면, 1기는 공직생활이었고, 2기는 영화계에 몸담았던 시기, 


3기는 앞으로 제게 남은 시간과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생활도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보냈고, 영화와 관련된 두 번째 시기도 보람있게 보냈습니다. 


특히 영화와 함께한 시간들은 축제 같았고, 축제와 함께한 시간이었죠.






앞으로 남은 3기는 저 자신에 대한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라나 사회에 대한 활동에 치중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나와 가족에 대해 봉사를 해야 할 시기라고 말이죠. 




그동안 못 했던 일들을 하며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는 일에 미쳤고, 영화제를 만들면서는 영화에 미쳤었습니다. 


이제 남은 삶은 뭐에 미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는 우연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직생활을 문공부에서 시작한 것, 퇴직을 할 때가 돼 영화와 인연을 맺고 영화인이 되어 제2의 삶을 살게 된 것. 


부산국제영화제를 창설하게 된 것 모두가 하나의 우연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제게 주어진 이 우연들이 제가 있을 최고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안 된다고 말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우연한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드는,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노력을 기울였기에 부산국제영화제도 성공할 수 있었다고 믿어요. 




이렇게 우연을 만나는 게 제 삶의 필연이었다면,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난 것 역시 제게는 필연이었겠죠.


축제 또한 삶의 우연한 순간에 맞닥뜨리는 즐거움이고,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만난 축제 안에서 얼마나 즐겁게 즐기느냐는 축제에 얼마나 깊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에 달려있을겁니다. 


이런 점에서 삶은 축제와도 닮았다고 생각해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일 년에 스무 번도 넘게 해외에 나갔는데, 작년부터는 줄이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중국 시안의 국제패션위크 행사와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뒤, 


다른 영화제 등의 초청에는 양해를 구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7월에는 일본 후쿠오카영화제와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말레이시아영화제를 다녀올 예정이에요.






이런 공식적인 일들을 제외하면 집에서 저만의 시간, 지인들과의 작고 소소한 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에서 책도 쓰고, 지인들을 초대해 조촐한 만남의 자리나 작은 영화 상영회 등을 하기도 합니다. 


주변 분들을 집으로 모셔서 영화도 함께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그러죠. 


그 간 바쁜 삶으로 하지 못했던 일들,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Q.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이사장 등으로 오랫동안 함께 해오셨습니다.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더욱 좋은 영화제로 발전하기 위해 조언을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앞으로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떤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개최되고 발전해야 한다는 원칙이 분명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부산국제영화제가 지향해 왔던 아시아의 영화를 집중 조명하고,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며, 


그들의 제작을 실질적으로 지원해 준다는 기본 원칙도 충실하게 유지돼야 할 것입니다. 


이런 원칙들 위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계속 개발된다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객을 위한 영화제로 남아있길 바랍니다. 영화제는 관객들의 축제이니까요. 


영화제가 성공하려면 좋은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좋은 관객이 없다면 그 영화제는 죽은 영화제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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