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동호와 함께하는 영화 축제산책




















▲ 에레반 황금살구 국제 영화제 개막식









아르메니아는 인구 320만의 작은 나라다.


흑해와 카스피해의 중간, 해발 1,000~2,000m의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은 그루지아, 서쪽은 터키, 동쪽은 아제르바이잔, 남쪽은 이란과 마주하고 있고, 그루지아 북쪽에는 러시아가 있다.






오스만 제국과 투르크족의 세력이 강성할 때에는 러시아 침공의 통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지정학적인 위치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에는 아나톨리아지방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이 강제 추방되는 과정에서 


100만 명이 넘게 집단학살된 비극의 역사를 갖고 있다. 


터키 정부에서는 ‘학살’ 자체를 부인하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은 1894~1896년의 1차 집단학살과 


1915~1916년의 2차 집단학살로 200만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1967년, 수도인 예레반에는 제노사이드박물관과 추모공원이 세워졌고, 정부는 매년 4월 24일을 추모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 학살당한 비극의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르메니아 국민들은 매우 친절하고 소박하다.






서기 310년, 유럽에서 제일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일 정도로 아르메니아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수도 예레반에는 제노사이드박물관 외에도 역사박물관, 오페라와 발레전용극장, 국립미술관, 수공예박물관과 


여러 분야의 문학관 등 50여 개의 문화시설이 있다.





















 영화제 스텝과 영화감독 하루툰 가차트리안과 함께(오른쪽 두 번째)








예레반에서는 매년 7월 초에 ‘골든 애프리코트 예레반 국제영화제’, 즉 ‘황금살구 영화제’가 열린다. 


영화제의 이름은 이 고장의 특산물인 살구에서 따왔다.


예레반의 살구는 좀 작지만 지금까지 먹어 본 살구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예레반 국제영화제의 창설은 매우 즉흥적이었다.


2003년 체코의 카를로비 바리영화제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갖고 참가한 영화감독 하루툰 가차트리안(Harutun Khachatryan)은 


친구인 네덜란드의 언론인 피터 반 뷰렌(Peter van Bueren)을 만나 매일 밤 술자리를 함께 했다. 피터는 나와도 절친이다.






올해 54회를 맞는 카를로비 바리영화제는 동구권을 대표하는 영화제다.


이 자리에서 피터 반 뷰렌은 하루툰에게 아르메니아에서 영화제를 창설하라고 제의했다.


이에 동의한 하루툰은 영화평론가인 스산나 하루추난(Susanna Harutyunyan)과 함께 영화제 창설을 서둘렀고, 


음해인 2004년 7월, 제1회 골든 애프리코트 예레반 국제영화제를 열었다.



여기에 그루지아 출신의 여배우 아시니 칸지안(Arsinee Khanjian)이 영화제 창설에 발벗고 나섰다. 


남편인 이집트 출신의 캐나다 감독 아톰 에고 이얀(Atom Egoyan)이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이렇게 창설된 영화제는 매년 오페라와 발레 전용극장인 국립아카데미극장에서 개·폐막식을 갖고, 


초청된 영화들은 주 상영관인 ‘시네마 모스코’의 대극장과 2개의 중극장에서 상영된다.






시네마 모스코와 로열 튤립 그랜드호텔 사이의 광장, 샤를 아즈나부르 광장(Charles Aznavour Square)에서


는 영화제 기간동안 밤낮으로 각종 음악회와 민속공연, 불꽃놀이 등 공연행사가 펼쳐진다.



경쟁분야에 오른 최우수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각각 ‘황금살구상(골든 애프리코트상)’이 수여된다.


















▲ 심사위원 기자회견(예레반)_왼쪽 두 번째 하투춘 집행위원장, 필자, 산드라 로테르담 집행위원장, 모릿즈 데 하텔른 심사위원장










나는 2006년 7월 10일에 개막된 제3회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던 모릿츠 데 하델른,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 산드라 덴 하머, 


키감독 예심 우스타오글루, 아르메니아 작가 페르치 제이툰시안 등 다섯 명이심사를 맡았다.






영화제 기간 중인 7월 15일, 나는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크지시토프 자누시 감독과 함께 아르메니아 문화부훈장을 받았다.


나는 틈틈이 아르메니아 출신의 전설적인 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박물관을 비롯하여 역사박물관, 현대미술관관 등 


많은 문화시설들을 돌아봤으며, 특히 영화제 기간 중 하루툰과 산드라, 


그리고 세 영화제가 운영하는 프로젝트 마켓인 로테르담영화제의 시네마트(Cine Mart), 부산영화제의 부산프로모션플랜(PPP)과 


예레반에서 새로 시작한 DAB(Directors Across Borders) 프로젝트를 서로 교환운영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07년 1월,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아르메니아 문화부장관과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정식으로 자매결연 선포식을 가졌다.


2008년에는 이창동 감독의 회고전이 열렸고 나는 이창동 감독과 함께 예레반을 다시 찾았다.


 예레반을 병풍처럼 안고 있는 아라라트 산록의 옛 역사 유적과 아르메니아의 명품인 ‘아라라트 꼬냑’ 공장도 시찰했다.






그 이후 나는 매년 초청을 받았지만 매번 초대에 응하지는 못했고, 2013년과 2015년에 아르메니아를 다시 찾았다.



특히 2015년은 아르메니아의 대학살, 즉 ‘제노사이드’ 100주년을 맞는 해였고, 


제노사이드와 관련된 아르메니아의 영화는 물론 ‘학살’을 소재로 제작된 다른 나라의 영화들도 특별 상영되었다.




















▲ 이창동 감독, 피터와 함께 고성(古城)으로 가는 길











영화제가 끝날 무렵인 7월 13일 일요일 저녁, 나는 하루툰 집행위원장의 안내로 밴드가 있는 클럽 레스토랑에갔다. 


뜻밖에도 그 자리는 세르즈 사르지얀(Serzh Sargsyan) 아르메니아 대통령이 초청하는 저녁자리였다.






참석자는 나를 포함해 하스믹 포고시얀(Hasmik Poghosyan) 문화부장관과 하루툰 영화제 집행위원장,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부부, 


그리고 영화제에 특별 게스트로 초청된 이탈리아의 배우 오르넬라 무티(Ornella Muti)와 독일의 여성배우인 


나스타샤 칸스키(Nastassja Kinski) 등 10명이 초청된 비공식적인 조촐한 저녁이었다.






영화제 게스트를 만찬에 초청할 정도인 황금살구 영화제의 위상과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이 부러웠고, 


특히 경호도 없이 클럽 레스토랑에 나타나 격의 없이 소탈하게 담소하고 배우들과 자유롭게 사진 찍는 대통령의 모습이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2006년 처음 방문해서 나에게 훈장을 달아 주었던 여성 문화부장관이 


10년이 지난 후에도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아르메니아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올해 16회를 맞이하는 골든 애프리코트 예레반 국제영화제는 7월 7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벌써부터 예레반의 살구 맛이, 마치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성격처럼 강하지만 부드러운 아라라트 꼬냑이, 


로열 튤립 그랜드 호텔 옆 골목에 자리한 ‘돌마마식당’의 맛있는 전통 음식이 그리워진다.






















김동호 자문위원장






현재 (재)동대문미래창조재단 이사장이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문화공보부 문화국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이후 영화와 인연을 맺어 영화진흥공사 사장, 제1대 예술의전당 사장,문화부 차관 등을 역임하고 


우리나라 부산국제영화제의 탄생과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국내 영화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부산국제영화제의 아버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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