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STIVAL LEADER ] 




내 안의 별이 실크로드가 되길


Lim-AMC 대표 서정림








반짝이는 별을 보며 방향을 잡고 길을 따라가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사방에 환한 빛이 많아진 시대엔 더 이상 별을 쫓으려 하지 않고, 땅 위의 빛에 눈을 빼앗긴다. 


그 중 매혹적인 불빛을 발견해 따라가다 보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빛이 많아진 시대, 빛 사이로 갈래길이 늘어난 시대에 산다는 건, 오히려 방황의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암흑에 둘러싸여 별이 만들어 준 길을 따라 걷던 시대, 보이지도 않는 길을 오히려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이 걷던 시대가 있었다. 


오래 전 그 별의 길을 따라 동서양의 문명이 교류했고,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실어 날랐다. 


그 길을 사람들은 ‘실크로드’라고 불렀다. 



오늘 날, 실크로드는 모래에 뒤덮이고, 문명이 세운 도시에 지워졌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꿈 속에서 빛나고 있으며, 


누군가는 한 마리의 낙타처럼 자신의 별을 쫓아 실크로드를 찾아 나선다. 


림에이엠씨(Lim-AMC) 서정림 대표 역시 빛나는 별과 실크로드를 찾아 길을 나섰던 유목민 중 한 명이다.









edit Kim Jeongwon, Bae Sangyoon


photo Bae Sangyoon








































학교 3학년 때, 한 편의 무용을 보고 “쿵 하고 얼어붙었다”는 서정림 대표.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느껴졌고, 평생 저 걸 하고 살거야라고 다짐했다”고 자신이 처음 별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경희대학교 무용학과에 입학한 후 일본에서 연극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우리나라에 돌아와 예술경영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처음 별을 발견한 뒤 지금까지 30년 이상을 서정림 대표는 무대위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따라 걷는 중이다.






공연 기획과 제작 분야에서 오래 일을 해 온 서정림 대표는 무대에 직접 서지 않는 은막 뒤의 지휘자인 까닭에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경주세계문화 엑스포, 부산국제영화제, 평창스페셜올림픽세계대회 등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적인 축제의 연출 및 예술 감독 등을 지냈고, 


뿐만 아니라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전문위원, 농촌축제컨설팅위원, 한중문화예술포럼 상임이사, 농식품부 자문위원 등 


공연예술계와 정부기관에서 예술적 깊이와 행정적 업무 능력 모두를 인정받고 있다. 



이런 활동에 대한 공로로 지난 2013년에는 대통령훈장까지 수여 받은 서정림 대표는 


여전히 “문화와 문화를 잇고, 예술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실크로드를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따라 가고 싶다”고 말한다.























Q. 무용을 전공하다 공연 기획자, 제작자로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A. 사실 처음부터 공연 기획자나 제작자가 되려던 건 아니었어요. 


첫 눈에 반한 무용이란 장르를 너무 좋아하게 돼 무용학과에 입학했던 거죠. 


때만해도 무용하는 사람은 춤만 배웠어요. 춤을 춘다는 것과 춤이라는 예술을 공연으로 만들고, 


무대 위에 올리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 술적 역량이 필요한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 


공연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는 무용가의 몫이 아니었죠.






공연을 무대에 올리게 되면 관객을 어떻게 공연과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데, 


늘 해오던 대로의 방식, 무용가는 무용 이외의 다른 과정에 참여하거나 개입하지 않는 타성에 


‘과연 무용 예술은 스스로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려는 의지가 있는가?’라는 의문으로 번졌습니다. 



무대 예술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위해 눈을 돌린 곳이 연극이었습니다. 


연극은 조명, 음향, 무대디자인 등을 제작팀 안에서 모두 해결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일본까지 건너가 연극과에 입학해 연출을 공부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용 작품의 영역을 확대하고 싶었고, 연극에서 그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이죠. 


그런데 공부를 계속하다보니, 무용 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 올라가는 다양한 공연들, 


그리고 무대 공연의 장르가 점차 확대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무용, 연극, 뮤지컬, 오페라를 비롯한 무대위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다양한 예술 장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공연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습니다.













Q. 무용가를 꿈꾸던 시절까지 포함하면 30년 이상을 무대와 함께 지내오셨습니다. 


그 길에서 힘이 되고,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준 분들이 있다면 누구였습니까?






A. 처음 무용을 시작했을 때, 무용이란 방향과 진로에 심적으로 큰 도움을 주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제 담임 선생님이자 화학 선생님이셨는데, 제가 무용을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이고, 멋지게 보아주셨죠. 


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께서 응원을 해 주셨던 그 말들이 제게는 굉장히 큰 자긍심을 만들어 주셨어요.






또 대학에 입학한 뒤 만난 박명숙 교수님도 잊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숨도 못 쉴 정도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수업에 들어오셔서


 ‘수업이 끝나도 밤 12시가 되기 전에는 집에 가지 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까지만 해도 선생님들은 일찍 집에 가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라 등 


아주 바른 생활에 대한 말씀만 하시는 분들이었는데, 대학에서 집에 가지 말라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거죠.






박명숙 교수님은 수업이 끝나면 미술관을 가고, 


미술관이 끝났는데도 시간이 남으면 시대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구경하라고 하셨어요. 


그 때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예술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묵묵히 오래 바라보면 사람 마다 다른 걸음걸이, 손짓과 몸짓 같은 것들을 연구하게 돼요. 


이익이나 목적과는 상관없는 호기심이 이끄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지죠. 


이런게 작품을 만드는 소재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그동안 많은 작품을 만드셨고, 기획하고, 무대 위에서 관객과 소통하셨습니다.


그 중 대표님께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A. 2010년 무대 위에 올렸던 ‘어머니의 노래’라는 작품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뮤지컬배우, 연극배우, 현대무용가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함께 무대에서 공연한, 당시로서는 아주 독특한 음악극이었어요.


우리나라의 근현대 속에서 소소한 삶을 살아 온 한 명의 어머니, 그리고 한 명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명동 한 복판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게 된 할머니 한 분이 공연 전반부에 등장하고, 


할머니의 죽음이 그녀의 과거 회상 장면으로 이어지죠. 


한국전쟁으로 결혼 첫 날밤을 보낸 남편이 군인이 돼 떠나고 생사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요. 


그 하룻밤의 정으로 태어난 아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주검으로 돌아오죠. 


그렇게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이 부산에서 포목점을 하며,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그린 음악극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노래’를 통해 무용과 연극, 뮤지컬을 망라한 작품을 무대 위에서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장르 간 융·복합 같은 말이 없을 때였거든요. 


이 작품을 하며,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꽃밭에서’ 등 대중가요를 오케스트라 연주로 편곡해 공연에 삽입했습니다.






그리고 소설가 황순원 선생님의 ‘소나기’를 굉장히 입체적인 콘서트 형식의 공연으로 무대 위에 올린 것도 제게 오래 남아있습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소나기’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대다수가 알고 있는 훌륭한 소설이죠. 


소설이라고 하면 읽어야 하는 것이란 고정된 관념이 있는데, 


그것을 공연으로 해석해 국악기에서부터 클래식의 바이올린, 클라리넷, 첼로, 하모니카와 피아노까지 동원해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공연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도를 하고 싶었어요. 


소설에 음악을 더함으로써 문학을 공연화 한 것이죠. 


5년 전 처음 무대에 올렸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습니다. 



소설을 한 번도 읽지 않았을 어린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 할머니 등 3대가 함께 공연을 보러 오세요. 


유치원생부터 70~80대까지 관람층이 다양한데, 신기한 건 노부부의 경우에는 눈물을 훔치며 작품을 보시고, 


아이들은 재미있다며 박수치고 웃으며 공연을 즐기더라고요. 


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공연에 이렇게까지 다른 반응이 나올 줄은 저도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공감대의 지점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Q. 대표님의 공연은 장르의 혼합, 혹은 융합에서 나오는 재미, 감동, 그리고 신선함 등이 인상적입니다.


공연 뿐만 아니라 여러 축제에도 기획자, 혹은 예술감독으로 참여하셨는데,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A.  1999년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에서 무용 페스티벌을 개최했었습니다.


보통 공연이란 건 관객이 한 장소에 입장하고, 입장하게 되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 장소에 머물잖아요. 


저는 무용 페스티벌의 첫 번째 공연을 엑스포 과학공원 입구에서 시작해 공원 내부로 관객들을 이동하게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각 건물로 이동하며 그 공간에 맞는 퍼포먼스를 공연했었던 것이죠.






2015년 경주에서 열린 세계문화엑스포 ‘실크로드 경주’에서는 길과 연결에 주목했죠. 


기획 단계에서 축제 주제는 실크로드인데, 경주와 터키, 경주와 베트남 등 공간에 대한 개념이 나오는 거에요. 


실크로드를 통해 공간 사이의 연결, 국제 무역 등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었지만,


실크로드가 공간 자체인 것은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일단 경주에서 축제가 열리지만, 


우리나라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서울에서 10일 동안 경주 실크로드 페스티벌을 열었습니다.






대학로에서 한 사람, 혹은 한 팀을 위한 카페를 만들고, 


자신의 사주를 몸의 언어인 무용으로 공연해주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두 이벤트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한 것들이었는데, 예약이 폭주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어요. 


관객들에겐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새로움과 만나는 길 위의 여정이니까, 그게 실크로드라고 해석한 것이죠.












Q.  대표님이 설립한 림에이엠씨(Lim-AMC)는 어떤 회사이며 어떤 목표를 추구하고 있습니까?






A.  림은 숲(林)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육체가 가장 건강하게 치유되고 회복되는 곳이 숲이라고 합니다. 


저는 예술이 인간의 정신을 가장 건강하게 해주는 정신의 숲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AMC는 Art Management Creative의 약자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새로운 방식을 찾고 싶었어요. 


예술을 제작하고 마케팅하는 방식을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회사 이름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동안 기획사들은 연극을 하는 곳은 연극만, 클래식만 하는 곳은 클래식만 해 왔습니다. 


저는 그런 장르에 국한되고 싶지 않았어요.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기획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무용에서부터 축제까지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거나 제작도 하고, 


우리나라 창작 공연부터 해외 공연의 국내 유통까지 모든 걸 다 아우르고 있어요. 



다른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한 것을 림에이엠씨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14년 째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제가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Q.  대표님의 중장기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이고, 또 어디까지 일까요?






A.  종종 예술 단체나 기관의 기관장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는 합니다. 


저도 너무 힘들 때면, 제가 가진 전문 지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삶을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회사를 운영한다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게 다가 아니라 되게끔 해야하고, 계속 이어지게 해야 하거든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과 긴장감을 늘 안고 살아야 하지만, 저는 일할 때가 가장 좋습니다. 


살아있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내가 희열을 느끼는 일을 계속하면서 그게 어디까지 이어질지, 


저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계속 쫓아가고 싶어요.






저는 종착지를 찾는 게 아니에요. 종착지를 찾았다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일테니까요. 


새로운 것을 찾아 새로운 길을 가는 것. 그게 제가 오늘을 사는 방법이고, 내일도 새로운 길을 가고 싶어요. 


새로운 것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길을 찾아가는 것. 그게 제 목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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