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명사가 읽어주는 축제



세계 제일

영화 축제를 위하여


칸국제영화제를 통해 본 우리 영화제



Film (Market) Festival. 영화제는 축제다.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국적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즐긴다. 영화를, 삶을. 사람이 만든 무수한 상상력의 세계가 영화제 기간 응축되어 폭발한다. 세계 3대 영화축제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 그리고 프랑스의 칸 국제영화제를 꼽는다. 그리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다. 이 세 영화제가 전 세계인과 영화인의 주목을 받는 3대 영화제이다.



칸, 영화 발상국의 자존심

필자는 1996년부터 2017년까지 22년 동안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칸 영화제를 방문했다. 필자가 찾은 그 22년 동안 칸 영화제는 고집스럽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왔고, 항상 최고의 영화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칸 영화제가 지금처럼 성장한 것은 베니스 영화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가장 오래된 영화제이면서 서로 경쟁 관계에서 영화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사실, 영화제를 먼저 시작한 곳은 칸이 아니라 베니스였다. 올해 75회를 맞이하게 될 베니스 영화제는 1932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8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그 시작이었다. 2회까지 비엔날레의 부속행사처럼 열리던 베니스 영화제는 1934년부터 독립된 행사로 개최됐다.


 

프랑스는 베니스 영화제를 보며 자극을 받고, 자존심에 상처도 입었다. 영화 발상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탈리아가 먼저 영화제를 개최한 것이다. 프랑스 영화는 영화 역사의 초기에 이탈리아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세계 영화의 중심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프랑스는 1939년 9월1일에 첫 번째 영화제 개최를 목표로 칸 영화제를 준비했다. 그러나 세계 2차대전이 발발했고, 영화제는 열리지 못했다. 종전 후 1946년 비로소 제1회 칸 영화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1948년과 1950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칸 영화제가 개최됐고, 프랑스 영화의 자부심이 되었다.


 

전문가가 만들고, 세계인이 반하다


그러나 세계 2차대전이 끝난 뒤 영화산업의 중심은 폐허가 된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미국이 상업영화를 중심으로 한 세계 영화 마켓을 주도한 것이다. 아무리 권위 있는 칸 영화제라고 해도 미국의 거대 자본을 꺾을 수는 없었다. 대신 칸 영화제는 영화의 작품성에 집중해 거장의 주목받는 작품을 초청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영화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기회가 바로 칸 영화제가 추구해 온 목표다.


이렇게 칸 영화제가 영화계에서 누적해 온 권위는 베니스 영화제도 따라올 수 없는 게 되었다. 칸 영화제의 이런 질적 성장 배경에는 전문성을 가진 칸 영화제 집행부의 역할이 컸다.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거의 80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칸의 회장과 사무총장은 5번밖에 바뀌지 않았다. 정권의 변화나 교체에도 흔들리지 않고 집행부가 가진 확고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영화제를 이끌어왔다. 이보다 교체가 적었던 건 4번 집행부가 교체된 베를린 영화제 정도이다. 베니스 영화제는 집행부의 잦은 교체가 영화제의 안전성과 지속성을 떨어뜨린 결과를 만들었고, 영화 마켓이 열리지 않다 보니 지금은 베를린 영화제보다 규모가 작아졌다.


칸 영화제가 작품성에 치중하면서도 할리우드 영화 중 거장의 작품을 초청하는 등 일류를 지향한다면, 베를린 영화제는 예술적 측면보다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가진 영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다 영화제가 추구하는 목표가 다른 것이고, 그 목표가 영화제의 특색을 만든 것이다.


 

칸,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우리나라 영화와 인연이 더 깊은 쪽은 베를린 영화제이다. 베를린 영화제에는 1958년 처음 작품을 출품했고,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은곰상을 받기도 했다. 반면 칸 영화제에는 1984년이 되어서야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가 처음 진출했다.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인 경쟁부문에 진출한 건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처음일 정도로 칸 영화제와 우리나라 영화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칸 영화제가 우리나라 영화와 깊은 인연을 맺은 건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부터이다. 1996년 필자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창설을 준비하던 중 칸 영화제에서 갑작스럽게 초청을 했다. 그곳에서 세계 유수의 영화제 집행부를 모두 만날 수 있었고, 그 자리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공로상을 칸 집행위원장에게도 수여했는데, 이듬해부터 칸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공식적으로 찾았다.


영화의 제삼지대인 아시아에서 이제 막 시작한 영화제에 칸의 공식적인 참석은 화제가 될만한 일이었고, 이렇게 맺어진 네트워크는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홍콩과 일본에도 부산보다 10~20년 정도 먼저 시작한 국제영화제가 있지만, 지금은 부산국제영화제보다 규모가 작다. 세계의 영화제와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에 따라 홍콩과 일본, 우리나라의 영화제가 다르게 발전한 것이다.


또 한 가지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사로 열릴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영화제의 특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는 모두 경쟁부문을 두고 수상을 한다. 즉 출품된 작품 중 최고를 가리는 영화제이다. 반면 부산국제영화제는 경쟁부문이 없고, 모두가 쇼케이스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비경쟁영화제 이다. 가능한 많은 작품을 영화제에 초청하고, 그 영화를 상영하려고 노력한다. 상이 없어 화려하지는 않지만 많은 작품과 함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경쟁부문이 있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일을 거쳐야 한다. 


경쟁부문의 유무는 영화제의 성격과 성패까지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칸 등 권위 있는 영화제는 감독과 영화인들이 출품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후발 축제가 이를 따라가기는 어렵다. 다른 곳에서 상영이 되지 않은 영화만 출품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홍콩과 일본의 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보다 규모가 작아진 것은 부산국제영화제와의 경쟁보다 칸, 베를린, 베니스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도 칸을 쫓기보다 우리만의 특징과 정체성을 찾고, 그 색을 뚜렷하게 만들어 가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영화제, 영화를 자극하다


영화제는 자국 영화를 해외에 알리는 창구기능을 한다. 칸 국제영화제가 시작된 이 후 50년 동안 출품된 작품이 5~6편에 불과했는데,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1998년한 해에만 4편이 칸에서 상영됐다. 반세기의 역사와 거리를 단숨에 좁힌 것이다. 이렇듯 영화제는 우리 영화의 해외 진출과 산업적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칸 영화제 역시 산업적 역할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큰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칸에 세계의 모든 영화가 모여 만나고 교류를 이어간다. 현재 칸 영화제는 우리나라 영화에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 집행부도 우리나라와 지속해서 유대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화제도 칸의 마켓 기능을 배워야 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05년부터 아시아의 필름 마켓 역할을 해오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 이후 여러 영화제가 국내에 생겨나고 있으나 변별력 있고, 정체성이 확실한 영화제를 만들고 키워나가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김동호 자문위원장
현재 (재)동대문 미래재단 이사장이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문화공보부 문화국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이후 영화와 인연을 맺어 영화진흥공사 사장, 제1대 예술의전당 사장,
문화부 차관 등을 역임하고, 우리나라 부산국제영화제의 탄생과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국내 영화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부산국제영화제의 아버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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